日 증류시장 성장 요인 벤치마킹 필요한 상황
쌀 소주 주질에 대한 고민 어느 때보다도 절실

증류식 소주 출시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 증류소도 증가하고 있고 기존 대형 주류업체에서도 증류식 소주를 내놓고 있다. 사진은 롯데칠성에서 신상품으로 출시한 ‘여울25’이다.
증류식 소주 출시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 증류소도 증가하고 있고 기존 대형 주류업체에서도 증류식 소주를 내놓고 있다. 사진은 롯데칠성에서 신상품으로 출시한 ‘여울25’이다.

증류식 소주의 생산량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출고액 기준으로 646억원, 그런데 2022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1,412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증류 소주는 성장세를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량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해서 증류식 소주 붐이 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회 현상이 갑작스레 유행하거나 번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판매 증가도 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증류식 소주의 통계수치는 아직 유의미할 만큼 쌓이지 않았다. 지난 2003년 일본의 증류식 소주가 희석식 소주를 추월할 때처럼, 아니면 1970년대 중반 가고시마 소주가 시장을 형성하며 일본 소비자들을 각성시킬 때처럼 그래프가 계속 올라간다면 그땐 우리도 비로소 ‘붐’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증류식 소주는 ‘쌀’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통제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 기간 사라졌다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시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혀 있던 ‘증류 소주’는 시장을 압도 하는 희석식 소주에 밀려 존재감조차 보여주질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지금의 판매를 두고 ‘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민망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같은 글을 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가 2021년 시장에 출시되기 전까지 증류식 소주는 소수의 사람만 알던, 그래서 ‘전통’에 갇혀 있는 유물 같은 존재였다. 다행히도 원소주는 2022년 27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증류식 소주 성장을 견인한다.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는 동안 고급주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연예인 마케팅까지 이뤄지면서 ‘원소주’는 젊은 세대의 시선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증류주 전문 양조장도 늘었고, 막걸리와 약주를 만들던 양조장들도 앞다퉈 증류기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숫자에 현혹당하고 있다. ‘원소주’가 증류식 소주의 존재를 젊은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증류 소주의 맛을 전하는 데는 사실 실패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증류 소주를 경험한 MZ세대가 재구매에 나서야 했는데, 다른 제품으로 소비가 넓혀지지도 않았고, 원소주 붐도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증류기 도입러쉬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일본에서의 증류 소주 붐이 일었던 원인과 우리가 지난해까지 본 증류 소주 성장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본격소주(증류식 소주) 붐은 고구마와 보리소주가 중심에 서 있다. 사실 일본에서의 쌀 소주의 지위는 중심에서 비켜 서 있다.

1차 소주 붐이 일던 1970년대 중반까지 전체 증류식 소주 시장의 15%를 넘지 않았다. 그것도 안남미를 쓰는 아와모리 소주를 합친 숫자다. 증류식 소주 붐이 일 때마다 고구마 소주는 중심에 있었으며, 쌀 소주의 비중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고구마와 보리는 향과 맛이 분명하지만 쌀소주는 상대적으로 뚜렷한 향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쌀 소주 생산 양조장들은 쌀 소주의 향기를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사과와 바나나 향을 내는 효모의 분리배양 및 보급, 신맛을 가진 입국(백국과 흑국)의 사용, 그리고 젖산 발효의 선행과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소주는 항아리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바닐라 향까지 찾아낸다. 그런데도 증류식 소주 시장은 고구마와 보리소주가 압도적이다. 그만큼 향기로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증류 기술과 숙성에 대한 접근보다는 소비시장의 트렌드에만 관심이 가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간과한 결과가 ‘원소주 붐’의 쇠락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증류소와 양조장 대표들의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증류식 소주가 자리 잡느냐는 이 고민의 결과가 결정해 줄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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